대한민국에서 일도, 구직 활동도 하지 않는 대졸자가 올해 상반기 400만 명을 넘어서며 역대 최대를 기록하였습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월평균 대졸 이상(전문대 포함) 학력을 가진 비경제활동인구는 405만 8천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만 2천 명 늘어난 수치입니다.
비경제활동인구, 즉 비경활은 만 15세 이상 인구 중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닌 사람들을 뜻합니다. 이들은 일을 할 능력이 없거나 일할 수 있음에도 일을 할 뜻이 없어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수치는 단순히 실업률 통계에 잡히지 않아서 경제활동의 숨겨진 문제를 드러내는 중요한 지표로 여겨집니다.
얼마 전, 언론 보도를 통해 대졸 비경활 증가세의 중심에 20대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였습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마이크로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월평균 대졸 이상 청년층(15∼29세) 비경활 인구는 59만 1천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천 명 늘어났습니다. 인구가 줄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졸 비경활이 늘어난 연령대는 청년층이 유일하다는 점은 이 현상이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뉴스 댓글창에는 '의지박약 젊은이'들을 향한 비난과 '대졸 백수 시대'에 대한 한탄이 끓어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개인의 의지 부족이나 게으름으로 치부할 수 없는 복잡한 사회적, 경제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2000년대 중반에 독서 시장에 불었던 자기계발서 열풍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다소 극단적인 희망을 골자로 하는 서구식 자기계발서에 담긴 응원과 격려에 독자들은 열광했습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탄줘잉의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 론다 번의 '시크릿' 등이 베스트셀러로 떠오르며 서점가를 휩쓸었습니다. 이는 노력으로 삶 전체를 바꿀 수 있다고 믿던 '꿈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꿈 이야기는 어느 순간 외면받기 시작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우리의 삶의 예측 가능성은 줄어들었습니다. 신자유주의적 서구 모델의 한계가 드러난 상황에서 미국식 자기계발서는 사회 모순을 외면하고 개인의 변화만을 강조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그 후, 어렵사리 취업에 성공한 젊은 세대들은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임금 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차별 등은 그들의 현실이었습니다. 높은 연봉과 안정적인 고용, 워라밸이 보장되는 직장을 선호하지만, 한정된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더욱 치열한 경쟁 속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직장에 남은 젊은이들은 스스로를 '공노비', '사노비', '학사모 쓴 노예' 등으로 칭하며 좌절감을 표현했습니다.
대졸 비경활 인구가 증가하는 현상을 두고 다양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청년·고학력자 중심의 비경제활동인구 증가는 생활고와 주거 불안정 심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며, 이는 경제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 격차를 줄이는 일은 중장기적인 과제이고, 청년층의 취업 선호도와 직업관 변화를 단기간에 개선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일각에서는 대졸 비경활 증가의 원인을 경제 구조의 변화와 노동 시장의 경직성에서 찾고 있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는 청년들이 '좋은 일자리'를 찾도록 압박하고 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구직 활동을 포기하는 청년층이 증가하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고용의 질이 낮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을 꺼리는 경향도 청년 비경제활동인구 증가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정책 변화와 함께 사회 구성원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자'를 무능과 모자람으로 인한 사회적 낙오자로 보는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노비'를 택할 바에야 무직자가 되겠다는 청년들에게 "배부른 소리 그만하고 아무 일이나 하라"고 다그치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비경제활동인구가 증가하는 본질적인 이유와 시대의 변화를 면밀히 분석해야 합니다.
또한, 비경제활동인구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은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고, 다양한 형태의 고용을 촉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프리랜서나 자영업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경제활동을 지원하고, 이들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고미숙 고전평론가는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라는 책에서 백수를 '경제활동을 스스로 조율하면서 자기 삶 전체를 관리하는, 삶의 주도권을 가진 존재'라고 정의했습니다. 우리가 노동을 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삶을 주체적으로 끌고 나가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 평론가의 진단처럼, '무직자'이자 '백수'를 사회적 문제아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제활동의 가치를 찾아 나서는 사회 구성원으로 보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 단추가 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인식 전환이 이루어진다면, 청년들이 보다 긍정적인 태도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사회 전체의 생산성과 행복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청년 비경제활동인구의 증가는 단순히 노동 시장의 문제를 넘어, 사회 전체의 가치관과 경제 구조를 재평가하고 개선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중요한 이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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