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성 콩팥병 환자의 삶에 대한 의지
환자들은 힘든 투석과정을 거치면서 신체적, 심리적으로 구속되어 있는 삶을 긍정적으로 전환하여 혈액투석과 함께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의지를 보입니다. 그들은 혈액투석을 받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집안일과 자녀 뒷바라지에 노력하며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하고자 합니다. 또한 혈액투석으로 에너지가 많이 소진되고 예기치 않은 몸의 이상증상으로 활동을 원활하게 할 수 없지만 참여자들은 혈액투석에 전적으로 구속되지 않으려 일상적 일과 자신의 원래 역할에 몰두하곤 합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장기기증본부에 등록하고 충실히 투석을 잘 받으며 자신의 몸 관리를 잘하면 언젠가 이식을 할 수 있을 거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한 번은 어깨 꽂은 관 때문에 염증이 와서 관을 빼내고, 곪은 거 째서 수술했는데... 열이 많이 나서 의사 선생님이 입원하라는데... 야단쳐도 그냥 거즈 붙이고 집에 왔어... 진짜 힘들었어... 너무 아프고 거즈가 피에 다 젖고... 근데 이틀만 있으면 애들 방학이니까 애들 방학할 때까지만 참고 입원할 거라고... 진짜 나는 우리 애들 때문에 살았지... 포기하지 않고... 중 ‧ 고등학교 6년 동안 교복 한 번 안 다 리고 입혀서 보낸 적 없어... 엄마가 아프니까 그런 거 티 안 나게 하려고..."
"아직 나이가 젊으니까 이식을 한 번은 할 기회가 있겠지 생각해요... 가족들 거 받는 건 내 마음이 힘드니까 일찍 포기했고요... 뇌사자 이식을 기다리고 있어요... 좀 더 뒤에 할수록 기술이 더 나아져서 거부반응도 덜하겠죠..."
2. 만성 콩팥병 환자 이야기 - 김미애 님(출처 : 아주대학교병원)
신장 교환이식을 준비하다
김미애 님이 처음 몸의 이상을 느낀 건 치과에서였다. 발치를 했는데 도무지 지혈이 되질 않아 본인은 물론 치과의 까지 크게 당황을 했던 것이다. 이런저런 방법을 써 봐도 피가 멈추지 않자 치과에서는 김미애 님에게 종합검진을 받아보라고 권유를 했고 병원에 간 김미애 님은 자신이 고혈압이라는 것, 그리고 신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때가 2014년 12월이었다.
지역병원과 아주대학교병원을 오가던 그녀가 오창권 교수를 처음 만났을 당시 오 교수는 환자의 상태를 ‘위독한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신장의 기능을 100이라고 보면 생활에 필요한 것이 약 20~30입니다. 이때 검사 상이든 불편한 게 생기든 그게 몸 밖으로 표현이 되면 그때는 이미 신장 70~80의 기능은 없어지고 생활에 필요한 것도 남지 않은 상황이라고 봐야 해요.”
처음에는 투석을 염두에 두고 대비를 해달라고 주문했으나 오창권 교수는 환자의 나이가 젊은것, 신장 기능의 회복이 어려운 것을 감안, 이식에도 큰 가능성을 두었다.
“김미애 님의 경우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에게서 신장을 이식받기 위해 혈액형 부적합 이식 시행을 위한 준비를 하다가 교환이식 적합 대상자를 찾았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장은경 코디네이터의 역할이 매우 컸지요.”
통상 교환이식은 준비시간이 더 소요되는 수술이다. 이식에 이르기까지 적합성을 위한 수많은 검사는 물론 대개 같은 날 수술을 하는 게 보편적이기 때문에 양쪽 집안의 4명이 모두 수술 가능한 일정 조율까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창권 교수의 경우 특히 기증자의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수술 준비 과정은 좀 더 엄격하고 치밀하게 진행됐다.
“상대측과 잘 맞는지를 보면서 기증자가 안전한 지를 검토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 늘 그쪽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가족을 위해 신장을 기증하는 분이 이식 과정에서 신체적인 유해가 되어서는 안 되니까 늘 기증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사회에서 기대하는 것도 그런 것이죠.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데 자신이 희생되는 부분이 있어서는 안 되잖아요. 그럼 훗날 누가 기증을 하려고 들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안전에 위해가 될 만한 것은 준비 과정에서 철저히 대비합니다.”
오창권 교수의 말에서 의사로서의 본분은 물론 사회적 책무까지 다하려는 올곧은 의지가 풍겨 나온다.
환자를 위한 최적의 면역억제 조합 연구
2016년 3월 31일에 시행된 수술은 순조로웠다. 인간의 신체구조는 모두 다르지만 각자의 상황에 따라 맞춤형으로 안전하게 수술이 시행됐기 때문이다.
“모든 과정이 순탄했어요. 기증자의 신장이 김미애 씨의 몸에 들어와 적응을 잘했고 걱정할 일은 특별히 생기지 않았습니다. 수술 이후에는 정기적으로 와서 약을 받고 검진을 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특히 수술 직후인 초기에는 좀 자주 와야 합니다. 거부반응이 생길 수 있거든요. 약을 지시에 따라 정확하게 복용하는 게 필수입니다.”
신장이식을 받은 환자들이 쓰는 면역억제제에 큰 관심을 갖고 최적의 면역억제 조합을 찾는 데 심혈을 기울여온 의사로 명성이 높은 오창권 교수는 수술 이후의 관리가 더 중요함을 힘주어 설명했다. 더불어 김미애 님은 주치의의 지시를 누구보다 성실히 잘 따라준 환자였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마디로 모범생이었지요. 이렇게 하면 좋겠다고 하면 말 그대로 충실히 따라주는 환자였어요. 우리 몸에는 타고난 성질이 있는데 다른 게 들어오면 쫓아내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생기지 않도록 평생 동안 약을 써서 눌러놔야 해요. 약을 중단하거나 거르면 바로 신장이 망가지는 이유가 그겁니다. 관리는 필요요소인데 저는 권해드리고 안내해 드리는 것까지는 할 수 있어도 대신해 드릴 수는 없거든요. 그러니 본인의 노력이 아주 필수적이죠. 본인이 잘 따라오면 본인도 좋은 거지만 제 입장에서도 더없이 좋은 일입니다.”
오 교수의 칭찬에 김미애 님이 쑥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사실 의사와 환자 사이에는 늘 무어라 단정 짓기 힘든 묘한 분위기가 감돌기 마련이다. 자신의 생명 혹은 운명을 제삼자에게 맡기는 환자나, 타인의 건강 혹은 삶을 책임지는 의사 사이에는 의무나 임무만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창권 교수와 김미애 님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광경은 꽤나 흥미로웠다. 수술이 성공리에 잘 끝나서였기 때문일까.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가 아니라 친척 어르신이라도 뵈러 온 듯 김미애 님이 풍기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이 더없이 인상적이었다.
“교수님은 처음에 뵀을 때부터 저를 편하게 해 주셨어요. 늘 확신 있게 딱 이거다,라고 짚어서 말씀을 해주시니까 신뢰가 갈 수밖에 없었고 제가 ‘잘 될까요?’라고 물으면 ‘못 고칠 것 같으냐?’고 반문을 하셨죠. 그럼 저는 그냥 웃으면서 ‘믿어요’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수술 전에 궁금한 것들은 다 물어보셨느냐고 묻자 김미애 님이 다시 환하게 미소를 짓는다. “궁금한 게 별로 없었어요. 제가 미처 궁금해하기도 전에 꼼꼼하게 다 말씀해 주셨거든요.”
김미애 님의 칭찬에 사뭇 깐깐해 보이는 오창권 교수가 소년처럼 어쩔 줄 몰라한다. 자신에 대한 칭찬을 바로 코앞에서 듣기가 면구스럽다는 것이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모두 오 교수의 수줍어하는(?) 낯선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이 여세를 몰아 환자를 대하는 자신만의 철학이 있는지를 질문하자 오 교수가 고개를 갸웃한다.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어떤 의도를 갖고 환자를 대하는 게 아니어서… 그냥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준다고 생각하는 거죠.”
철학이니 뭐니 하는 거창한 명분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앞에 앉은 환자에게만 집중한다는 그의 말에서 그가 왜 명의로 불리는지 숨겨진 비밀을 엿본 기분이다.
장기기증에 더 많은 관심을
현재 김미애 님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자신을 도와준 오 교수의 성심에 열심히 답하는 중이다. 어머니 덕분에 타인의 신장을 받았으니 건강하게 오래 사용하기 위해 꾸준히 약을 챙겨 먹고 식이요법에도 굉장히 신경을 쓰며 매일매일을 열심히 살고 있는 것. 오 교수가 이야기를 듣는 와중에 “5년, 10년이 지나도 이 마음이 퇴색해서는 안 된다”라고 당부를 한다.
“궁극적으로 이식의 목적은 환자의 활동성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투석을 하면서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그 번거로움을 없애주는 거죠. 약을 먹으면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활동을 하면 사회재활이라는 측면에서 젊은 환자의 삶의 질이 달라지게 되니까요.”
더불어 오 교수는 장기기증에 관한 긴 부탁의 말을 덧붙였다. “연예인들의 장기기증이나 사회 저명인사들의 장기기증 등을 통해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의사 입장에서는 우리 사회가 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갖기를 바랍니다. 사망자는 물론 뇌사 장기기증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장기이식의 혜택을 받기를 바라요. 누군가의 삶을 구하고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란 결국은 서로를 도우면서 살아가는 과정이니까요. 더불어 신장 기능이 원활하지 않은 분들도 장기이식의 가능성이 주어진다면 열심히 노력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서도 잘 알아둬야 하고 장기이식 대기등록을 통해 희망을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연거푸 감사인사를 잊지 않는 김미애 님, 끝까지 관리를 잘해야 한다며 정기적으로 얼굴을 보자고 독려를 잊지 않는 오창권 교수. 둘의 만남은 ‘서로를 향한 무한한 신뢰가 빚어낸 기적’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던 한없이 귀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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