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함은 죄책감과는 다른 감정으로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부끄럽다고 느끼는 감정입니다. 미안함이 지나치면 자책으로 곪아가게 됩니다.
1. 만성 콩팥병 환자들이 가지는 미안함
만성 콩팥병은 완치가 불가능하고 평생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으로 환자와 보호자에게 심한 스트레스를 줘 정신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칩니다. 대다수의 환자가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같은 증상을 어쩔 수 없이 겪는 것이라며 방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서적인 문제는 환자의 의지와 치료 순응도를 떨어뜨려 질병의 예후를 악화시키고, 이로 인해 더 심한 우울증을 겪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환자는 가족과 동료에게 짐을 지우는 것 같다는 부감감과 미안함, 완치가 불가능함으로 인한 걱정, 친밀한 타인들로부터 소외된 것 같다는 불안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정신 건강을 해칠 수 있습니다.
가장 고통을 받는 부분은 질환 자체에서 오는 심리적 충격과 신체기능 및 외형 변화에 따른 자존감 저하입니다. 질병이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며 장기화되면 극심한 심리적 변화를 겪게 되고, 결국 치료에 대한 무기력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입원치료로 가족과 분리되거나 직장을 그만두면 자신감이 떨어지고 더 이상 사회의 일원이 아니라는 좌절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됩니다.
"어떤 것으로도 보답할 수 없는 사랑과 무엇으로도 치유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가족들에게 주었다는 것 이 무엇보다도 저를 힘들게 합니다"
"항상 미안하고 때로는 가족의 관심이 부담이 될 때도 있습니다"
"나로 인해 가족들이 염려하지 않나 눈치가 보이고 항상 신 경이 쓰입니다"
"언제나 아픈 모습에 식구들 보기 미 안 해서"
"나 때문에 우리 집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졌고 특히 동생들이 나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가족에게 미안하고 불안해요"
"물질, 의식 주 또 심적으로 육적으로 많은 힘이 되어준 가족들에게 고맙다는 표현보다는 내 아픈 것만 짜증만 내게 된 것이 미안할 뿐이죠"
"나를 위해 무척이나 애를 쓰고 있어 미 안 하고 고맙고 보답하고 싶어요"
"너무 오래 아프다 보 니 이제는 가장으로 가족을 돌볼 힘도 없고 가족들이 걱 정스럽고 미안해요"
2. 미안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열린 마음을 갖고 주변에 도움을 청하고, 가족과 함께 적절한 휴식과 마음의 안정을 취하며, 질환에 대해 긍정적이면서도 일관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환자는 미안함으로 인한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문제의 원인을 찾는 데 있어 외부적인 요인에서 찾는지 내부적인 요인에서 찾는지에 대한 본인의 성향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다음으로 감정과 현실을 구분하여 바라보는 것이 좋습니다. 감정을 배제하고 현실만을 바라본다면, 질병을 예방하지 못한 것은 지나간 일이라는 것, 그로 인해 관계가 나빠지는 것은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이라도 생각하면 뭔가 해결책이 있을 것이라는 것, 앞으로의 관계는 지금부터 내가 만들어가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 등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감정적인 죄책감이 있다면 말과 글로써 표현해 보고, 이 감정이 있으므로 인해 내가 얻는 이득과 손실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봄므로써 그 감정을 조금씩 해소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종하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병을 앓고 있으니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겠냐며 정신건강에 소홀한 만성질환 환자가 꽤 많다”며 “환자 스스로 정신질환을 자각해 내원하기는 쉽지 않으므로 가족이나 보호자들의 적극적인 권유와 관심이 필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교수는 “약으로는 마음을 고칠 수 없다는 자포자기한 심정, 반대로 약물치료 후 증상이 나아졌다는 안도감 탓에 환자 임의로 약물치료를 중단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며 “정서적인 문제는 만성질환의 예후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만큼 장기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이어 “가족력, 증상 정도, 재발 빈도 등을 면밀히 살펴 치료하면 재발 위험을 줄일 수 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3. 만성 콩팥병 환자 이야기 - 김숙자 씨[출처 : 동아일보]
김숙자 씨(67)는 만성 신부전증 환자였다. 콩팥 기능이 6%까지 떨어졌었다. 그러다가 올해 4월 말에 콩팥 이식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민상일 서울대병원 이식혈관외과 교수가 집도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김 씨는 새 콩팥을 얻었으니 만성 신부전증에서 해방될 거라고 믿었다. 아니었다. 김 씨는 33일 동안 퇴원하지 못하고 제2의 투병을 해야 했다.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겼던 것. 자칫 새 콩팥마저 잃을 위기에 처했다. 그래도 김 씨와 민 교수는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했다.
● “당뇨병 때문에 콩팥 질환 악화 가능성”
2005년 소변에서 거품이 생겼다. 가까운 병원에 갔더니 당뇨병이라고 했다. 잘 관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약은 거르지 않았고, 매일 1시간 반 남짓 걷기 운동도 했다. 김 씨는 당뇨병이 만성 신부전증의 징후일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민 교수는 “당뇨병이 생기고 평균 15년 후에 콩팥 질환이 생기는 사례가 많다”라고 했다. 이때 이미 콩팥이 손상되기 시작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다.
2010년에는 고혈압 진단도 받았다. 지나치게 높은 고혈압 또한 콩팥에 악영향을 미친다. 다만, 약간 혈압이 높은 정도는 무방할 수도 있다고 민 교수는 설명했다. 이후로도 겉으론 아무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다.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간 적도 없다.
4년 전, 한 대학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콩팥 질환이 의심된다는 소견이 나왔다. 이후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목이 마르고 물을 많이 먹게 됐다. 다리가 붓고 온몸이 가려울 때도 있었다. 민 교수는 “노폐물이 빠지지 못해 나타나는 증세”라고 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대처했다. 운동은 더 충실하게 했다. 식단에도 신경 썼다. 쌀밥은 잡곡으로 바꿨다. 나트륨과 칼륨은 콩팥 질환자가 특히 피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이런 성분이 많은 바나나, 아보카도, 토마토 같은 과일과 채소는 먹지 않았다.
김 씨는 이렇게 대처하면 몸이 좋아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콩팥 상태는 더 나빠졌다. 민 교수는 “콩팥이 일단 손상되면 식단 관리나 운동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 상황인 것.
● 투석 버티다 시동생 콩팥 이식
지난해 2월, 김 씨는 서울대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 콩팥 기능이 6%만 남아있었다. 말기 신부전증 진단이 떨어졌다. 투석 치료를 시작하기로 했다.
입원을 기다리던 4월 말, 갑자기 음식을 토하기 시작했다.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드러누워 있지 못할 정도로 옆구리 통증이 심했다. 응급실로 직행했다. 신우신염이라고 했다. 치료를 더 미룰 수 없는 상황. 일단 감염부터 잡은 뒤 혈액투석 준비에 들어갔다.
혈액투석은 혈액을 몸 밖으로 빼내 노폐물과 과잉 수분을 제거한 뒤 다시 몸 안으로 집어넣는 것을 말한다. 투석을 하려면 혈액의 이동 통로를 먼저 만들고, 4∼8주 후에 투석을 시작한다.
김 씨는 5월 말부터 투석을 매주 3회씩 받았다. 투석은 4시간 정도 소요된다. 투석을 한다고 해서 콩팥 기능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현상 유지가 최선이다. 민 교수는 “투석할 때 콩팥 기능의 10∼15%만 작동한다. 투석 기간이 길어질수록 상태는 더 안 좋아지고 환자는 힘들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유일한 해법은 콩팥 이식이다. 7월에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코노스)에 이식 대기자로 등록했다. 하지만 대기자가 워낙 많아서 순번이 돌아올지는 알 수 없었다.
10월, 김 씨의 시동생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시동생은 지인이 투석하는 것을 지켜보니 정말 힘들 것 같더라며 말을 꺼냈다. 이어 김 씨에게 콩팥 기증 의사를 밝혔다. 이와 관련해 민 교수는 “좀처럼 보기 힘든 사례다. 가족이 무척 화목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곧바로 이식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먼저 김 씨와 시동생의 혈액을 섞어 거부반응을 살폈다. 수혜자인 김 씨의 혈청에 들어 있는 항체가 시동생의 백혈구를 공격하지 않았다. 일단 합격점이다.
김 씨의 혈액형은 B형, 시동생은 A형이었다. B형에는 A형을 공격하는 항체가 있다. 다만 김 씨의 경우 이 항체 수치가 낮았다. 이식에 큰 문제가 없을 수준까지 항체 수치를 떨어뜨렸다.
모든 작업이 끝난 올해 4월, 콩팥 이식 수술이 시행됐다. 수술은 로봇을 사용해 3시간 만에 끝냈다. 콩팥을 이식한 경우 보통은 10일 이내에 퇴원한다. 하지만 김 씨는 그러지 못했다. 또 다른 투병을 시작해야 했다.
● 33일 동안의 두 번째 투병
수술 후 소변이 잘 나오면 정상을 회복하고 있다는 신호다. 보통은 수술 후 1시간당 400∼500cc의 소변을 본다. 하지만 김 씨는 300cc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곧 나오지 않았다. 민 교수는 초음파로 이식된 콩팥을 살폈다. 혈액이 잘 공급되고 있었다. 수술에는 확실히 문제가 없다는 증거. 원인을 찾아내야 했다.
항체 거부 반응일 확률이 높았다. 투석과 같은 방식으로 혈액을 꺼내 문제가 될 만한 항체 수준을 낮추고 다시 혈액을 집어넣는 ‘혈장 교환술’을 시행했다. 하지만 첫 일주일 동안은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김 씨는 여전히 통증으로 고통을 호소했다. 소변이 나오지 않아 투석을 또 해야 했다.
이식받은 콩팥을 살리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커졌다. 김 씨는 “시동생 생각만 하면 너무 미안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최악의 경우 김 씨 자신은 다시 투석 치료를 받으면 되지만 콩팥을 내어준 시동생의 헌신은 아무런 보람도 없이 끝나게 된다는 사실이 내내 걱정됐다는 것이다.
민 교수의 걱정도 커졌다. 이식받은 콩팥의 조직검사를 시행했다. 항체 거부 반응이 확실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곧이어 항체의 정체도 알아냈다.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만 보고된 특이 항체였다. 이 항체의 공격으로 콩팥이 기능을 못 하고 있었던 것. 민 교수는 이 항체를 다루는 외국 기업 국내 지점과 접촉해 이 사실을 최종적으로 확인했다. 이어 그 항체의 수치를 낮춰갔다.
김 씨는 이식 수술 후 33일 동안 입원하면서 15회의 혈장 교환술을 받았다. 소변이 나오지 않아 투석도 3회 시행했다. 혈장 교환술과 투석 모두 4시간이 소요된다. 김 씨는 그 고통을 꿋꿋하게 버텨냈다. 덕분에 20여 일이 지나면서 눈에 띄게 좋아졌다. 33일이 지난 6월 1일, 마침내 김 씨는 병원 문을 나설 수 있었다.
● “의사의 격려가 큰 희망이 됐다”
김 씨는 한 번도 ‘완치’를 의심하지 않았다고 했다. 김 씨는 “병상에 누워 있을 때 민 교수님이 와서 ‘걱정하지 마시라. 다 잘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고 말했을 때 가장 큰 힘이 됐다”라고 했다. 이와 함께 의사의 헌신 또한 완치에 있어 중요한 요소다. 민 교수는 김 씨가 입원한 기간 내내 휴일을 포함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상태를 체크했다. 휴일인데도 민 교수가 직접 김 씨 병상을 찾는 날도 많았다.
요즘 김 씨는 2주 혹은 3주마다 민 교수를 만나 몸 상태를 살핀다. 시간이 더 흐른 뒤에는 한 달 혹은 두 달마다 병원에 오면 된다. 또 하루에 2회 면역억제제를 먹어야 한다.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약을 거른 적이 없다고 했다. 운동도 마찬가지. 김 씨는 “매일 1시간 반씩 걷는다. 비가 와도 걷는다. 요즘 몸 상태는 최상이고, 무척 만족하고 있다”며 웃었다.
재발 우려는 없을까. 민 교수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처럼 관리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건강을 되찾은 덕분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렸을 때도 큰 탈 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해 민 교수는 “콩팥 이식 환자도 감기약은 먹어도 된다. 다만, 코로나19 치료제(팍스로비드)는 면역억제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의사와 반드시 상의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올 11월, 김 씨는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이제 비행기를 탈 수 있을 만큼 건강이 좋아졌다는 판단에서다. 민 교수도 “이제 마음껏 다니셔도 된다”며 웃었다.
만성 콩팥병 환자들이 가족에게 느끼는 미안함은 당연한 감정입니다. 다만 치료를 위해, 가족으로부터의 지지체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미안함이 지나쳐 자신에 대한 자책으로 곪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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